‘시사인’은 내가 본 것 중 언론인 같은 기사가 가장 많은 시사 주간지라고 생각했다.
요즘 연재 중인 죽음의 미래 시리즈는 특히 관심 있는 내용이어서 집중적으로 본다.
며칠 전 받은 690호도 여전히 기대를 안고 읽다 눈을 의심하는 내용을 발견했다.
장정일의 독서일기 중.
실제로 지면을 찍었는데 잘 보이지 않아 ‘시사인’ 홈페이지에서 다시 영상을 가져왔다.
한 책에 대한 소개인데 조선시대 양반이 몇 년에 걸쳐 쓴 일기가 한 권의 요약본으로 나왔는데 이 책의 집필 시기가 임진왜란 때이고 전쟁 당시의 시대상을 상세하게 보여주는 좋은 사료라는 얘기다.
그런데 필자인 이 양반은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는데도 자신의 안위에만 관심이 있는 지방마다 같은 양반끼리 교류하며 잘 모르는 사이인데도 서로 배려하고 양반계급끼리는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장정일은 이 점을 비판하고 있다.
이 비판은 수긍이 간다
그런데 그 같은 폐해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예로 든 것이 강원랜드 채용비리 사건과 조국 사태다.
강원랜드 채용 비리, 아시다시피 자유한국당의 권성동 염동렬 의원 등이 지인의 부탁으로 많은 낙하산을 내려갔다고 하는데,
법적으로는 권성동 씨는 무죄 판결을 받은 사건이다.
항간에서는 검찰의 기소 내용이 가 아니다.
법치국가인 대한민국, 검찰과 사법은 공정하니 정말 죄가 없음에 틀림없다.
강원랜드 2013년 신입 최종 합격 보고 문건 입수 www.hani.co.kr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가진 국회의원이 강원랜드 사장과 본부장 등을 움직여 탈락자까지 합격시킨 이 같은 범죄는 장 작가가 비판하려는 맥락과 상통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국 장관 문제가 과연 돈과 지위와 인맥을 가진 상위 계층이 상호부조로 결속돼 있다는 주장의 예가 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조국 장관과 정경심 교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잘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
도대체 검찰의 무리한 기소나 공소장 변경, 권력형 펀드가 모두 소설이었다는 것쯤을 조사하지 않고 글을 쓰는 걸까.
장작가는 아무래도 조중동의 구독자나 기사 제목만 보는 듯하다.
주요 시사주간지에 고정칼럼을 쓸 만한 이름을 가진 작가도, 사건의 맥락이나 그 후의 재판 진행 과정도 제대로 보지 않고 용감하게 지면에 글을 쓰는 상황이니 많은 댓글이 비슷한 사고를 하는 게 당연할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용한 글귀 ‘도움이 되는 관계를 가진 사람들과 그런 관계를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은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는 말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이런 글의 끝에서 이 글을 인용했다는 점에서 장작가가 생각하는 도움이 되는 관계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잣대로 관계의 쓸모없음을 구분할 수 있을까.
시골에서 농사짓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이웃은 이런 기준에서 쓸모가 있는 사람일까.
우리는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을 골라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옳은가.
만약 계급 간의 결속 때문에 한국을 하나의 나라로 볼 수 없다 라는 비판을 하고 싶다면,
지구상에 과연 어느 나라가 한 나라일까.
어쨌든 이처럼 사실 확인이 부족한, 혹은 없는 용감과 무지 사이를 줄타기하는 글을 며칠 전에도 본 기억이 있다.
단숨에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은 정론직필 대한민국 일등신문사 조선일보 정치부 에이스 원선우 기자.
대학 서울대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1등 신문사에 들어간 수재가 어떻게 이런 황당한 기사를 용감하게 냈을까.
남과 북 혹은 통일이란 내용만 나오면 반사적으로 문재인정권이라는 생각이 튀어나올까.
알고 보니 전직 기자도 사실 확인 없이 잘못된 sns 하나를 믿고 성급하게 기사화한 게 아닌가 싶다.
두 채의 집을 소유하고 있으며, 지역 문제로 임시 임차인이기도 한 윤희숙 씨,
“저는 세입자입니다”라는 희대의 사기 명연설로 순식간에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은 국력당 윤희숙씨가 sns에 올린 글을 보고 확인하지도 않았고,
기사화하여 정권을 비난하려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기자들이 먼저 쓰는 것은 아닌지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기사를 실은 직후 주위의 칭찬과 환호에 얼마나 들떠 있을까.
‘초등학생도 아는 걸 모르면서 기자하느냐’는 댓글을 보고 뒤늦게 사태를 눈치채고 기사를 수정했는데 수정한 제목도 대단하다.
앞뒤 가리지 않고 정권 흉을 본 것은 어쩔 수 없이 고쳤지만 그래도 비난은 하고 싶다는 기자의 간절한 소망이 담긴 제목 수능이냐 통일교육이냐.
사실 교과과정에서 통일교육을 해야 하는데 그러면 전쟁교육을 시키느냐는 비아냥거림이 있을 수 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다만 작가든 기자든 지면에 이름을 걸고 어떤 글을 쓰기 전에 최소한의 사전 조사와 사실 확인을 하는 것이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닌가 싶다.
아무쪼록 명망 있는 사람들의 글을 의심 없이 그대로 읽어도 되는 날이 빨리 온다면 이를 위해 강력한 가짜뉴스 처벌법이 빨리 제정되기를 바란다.